봄빛 푸르구나, 茶의 바다
제주섬이 분홍 벚꽃으로 꽃사태를 이룬 지난 4일, 서귀포 도순다원에 다녀왔습니다. 청명(淸明) 직후 새싹을 틔운다는 연초록 새순을 보기 위한 봄소풍이었습니다.

한 달 전 비바람이 후두둑 치던 날 새순을 보지 못한 채 돌아왔던 아쉬운 마음 때문일까요. 서귀포 산록도로를 따라 달리는 차창에 실려온 바람도 싱그럽고 향기로웠습니다. 서귀포시 회수동에는 활짝 핀 벚꽃들이 꽃터널을 이뤄 달뜬 마음을 더 달뜨게 했습니다.

서귀포의 유서 깊은 사찰 ‘법화사’를 지나 도순동 도순2교에 이르니, ‘도순다원’이라고 적힌 작은 팻말이 보였습니다. 도순2교에서 좁은 농로를 따라 한라산 쪽으로 1.5㎞ 달리니, 도순다원이 초록 융단을 깔아놓은 듯 펼쳐졌습니다.

새순이 지난해보다 2주 정도 늦게 돋았다는 도순다원 유홍석 소장의 말에 조바심이 일었지만, 작은 눈에도 연초록 생명의 순을 분명히 볼 수 있었습니다.

찻잎에 서리가 맺히는 것을 막기 위한 팬이 곳곳에서 휘휘 돌고 전봇대가 우뚝 솟아 있었습니다만, 찬란한 봄빛을 훼손시키지는 못했습니다.

구불구불한 농로를 따라 차밭으로 달렸습니다. 저 멀리 한라산정은 봄안개로 희뿌였지만, 잘게 부서지는 햇빛과 그 빛 사이로 반짝이는 새순은 솜털처럼 곱고 맑았습니다.

차나무의 초록빛은 한겨울 거센 바람을 견뎌낸 후의 새 빛이라 더 경이로웠습니다.

차밭 돌무더기엔 노란 유채꽃이 함박웃음을 띠고 상춘객을 맞았습니다. 까만 현무암으로 산담을 두른 무덤에는 탐스러운 고사리가 불끈불끈 솟아 경이로운 생명력을 보여주었습니다.

서귀포의 젖줄인 강정천을 가운데에 둔 도순다원은 한라산으로 가까이 갈수록 더욱 푸릅니다. 서귀포 앞바다까지 펼쳐진 차밭에는 푸른 등고선처럼 초록 파도가 일렁이고 있었습니다. 산 정상에서 바다까지 볼 수 있는 유일한 다원이어서 전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차밭으로 불린다고 합니다.

농로 중간중간에는 여행객을 위한 탁자와 의자들이 놓여 있습니다. 이 쉼터에서는 봄소식도 나누도, 마음도 나누고, 추억도 남길 수 있습니다.

사진기가 찰칵찰칵 저절로 돌아갑니다. 봄빛, 봄향기를 담기에 분주합니다.

8만평 초록융단을 밟고 내려오는 길, 다심(茶心)이란 말이 떠올랐습니다. ‘차 한 잔에 무슨 마음?’이라고 말할지도 모르지만, 새 찻잎이 마음에 범람하던 날, 내 집 저녁 밥상에도 청록빛 찻잔에 연초록 찻잎을 놓고 싶어졌습니다. ‘차 한 잔에 무슨 마음?’이 아니라 ‘차 한 잔에 마음 가득’입니다. 오늘도 다심, 내일도 다심.

<제주일보발췌>